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테 마사무네 (문단 편집) === 내정, 외교가로서 마사무네 === 무장으로서는 다른 다이묘들에 비하여 상당히 떨어지지만, 내정가 혹은 외교가로서는 가히 전국 다이묘 중에서도 최고라고 해도 될 만큼 대단하다. 우선 내정 부분에서는 센다이 평야를 개간하며 부하들에게도 개간 사업을 장려, 운하를 건설하는 등 내정에 힘을 쓴 끝에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 58만 석이었던 영지를 말년에는 실질 백만 석으로 늘렸고, 자신의 아들에게도 계속해서 개발 사업을 장려하여 백년 후에는 무려 석고가 2백만 석까지 늘어나 일본 최대의 번이 되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다테 마사무네》에서는 마사무네가 싸워 얻은 영지를 히데요시가 무력 개입하여 대폭 감봉시켰다고 부들거리는 마사무네에게 마사무네와 묘한 친분관계가 있던 이에야스가 '자네 영지는 실질 고쿠다카가 굉장히 과소평가되었고 미개발 상태[* 센다이시의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이 지역은 아직까지 많이 미개발된 지역으로 당시 기준으로 일본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던게 에도인데 그 에도보다도 한참 떨어져 있다. 이쯤되면 그냥 변두리 시골인 셈. 물론 그렇기에 반대로 개발하여 키워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서 개발 사업만 잘 하면 백만 석 정도까지 거둘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좋은 영지를 히데요시가 미처 몰라서 준 건데 왜 화를 내는가?'하고 조용히 타이르기도 한다. ~~잠재력 있는 땅을 줄테니 키우는건 니가 하라는 소리~~][* 이렇게 센다이 번이 강성한 번이 된 만큼 그만큼 영향력도 세져서 가령 에도에서 소비하는 쌀은 절반이 센다이산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또한 대형 항구를 만들어서 에도에 이 쌀들을 판매하는 해상 판로를 개척했다. 쌀 판매는 대단히 활발하여 에도 시내에서 소비하는 쌀의 절반이 센다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설명이 있을 정도이다. [* 거대한 생산력을 통해 구축한 경제력과 비교적 명군들이 많이 나왔던 센다이 번은 상당 기간 동안 번영을 누렸지만, 7대 시게무라의 대에 와서는 소빙기가 야기한 온갖 자연 재해와 기근, 잇키, 막부의 국역 부과, 에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화재로 에도 저택들이 잦은 소실된 것 등 온갖 악재에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시게무라가 통치하던 센다이 번의 채무는 60만 냥에 달했고 에도에 쌀을 수출한다는 번에서 쌀을 2만 석 넘게 빌리고 있었다. 게다가 시게무라 말년에 와서는 일본 최악의 기근 중 하나인 텐메이 기근이 터져 센다이 번에 큰 피해를 입혔다. 텐메이 기근이 끝난 뒤에도 센다이 번에는 자연 재해나 잇키가 잦았고, 8대 ~ 11대까지는 다이묘들이 평균적으로 10년 이상 통치하지 못하고 급사하는 일이 많아 번정이 혼란스러워졌으며 재정도 나빠져서 채무가 70만 냥이 넘었다.] 내정도 대단했지만 특히나 대단한 부분은 외교였다. 물론 약간 실패도 있었고 운이 따른 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단 최초로 다테 가문이 망할 뻔했던 위기였던 사타케 가문과 벌인 대전에서 사타케 가문에게 패배하였으나, 당시 선대로부터 동맹이었던 호죠 가문을 움직여 가문의 멸망을 막았다. 이후로도 호죠 가문과 계속해서 친선하며 강적인 사타케 요시시게를 호죠와의 싸움으로 묶어두었고, 메고히메를 아내로 맞으며 타무라 집안과 혼인 동맹을 맺었으며, 니혼마츠 가문을 압박하고 협박하여 성을 무혈 개성하고 아시나 가문으로 도망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오사키와의 전투에서 패배 후 벌어진 모가미 가문과의 대전에서는, 다테 요시히메를 직접 전장에 오게 하여 강화를 이루었고, 이후 모가미와의 동맹을 맺어 후방을 안정시켜 아이즈 정벌에도 성공했다. 이후 히데요시와의 상대에서는 호죠와 맺은 동맹 때문에 고민하다가, 오다와라 공방전에 늦게 참전하며 히데요시에게 감금당하기도 했으나 다수의 병력을 동원하여 히데요시를 만족시켰고, 또 [[센 리큐]]에게 다도를 배우고 싶다며 접근하는가 하면 본래 자신을 처벌할 생각이던 히데요시를 구워삶아 비록 아이즈는 빼앗겼지만 세력을 상당부분 보존하였다.[* 히데요시는 자신을 천하의 패자로 선언한 뒤 [[센고쿠 시대]]를 끝낸다며 '소부지레이'를 선포하여 다이묘 간의 모든 싸움을 사사로운 것으로 엄금했는데, 마사무네는 이걸 어긴 혐의를 받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대규모 토벌로 인해 같은 혐의를 받은 시마즈 씨 등의 세력이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호조씨는 아예 멸망해버렸음을 생각하면 마사무네는 선방한 편이다.] 히데요시 정권 하에서는 잇키를 선동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심지어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따르면 히데요시에게 "니가 반란을 하려고 했던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니 목숨만은 살려준다. 다만 너는 다시는 네 영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나 어쨌든 영지 이전과 함께 용서받았다. 단, 이 당시의 영지 감봉은 다테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히데요시의 토지 측량법 변경으로 인해 세금 징수가 상당히 가혹해진데다가 고향과 달리 황량한 땅이 주어진 덕분에 제대로 된 소출을 낼 수 없어서 개간을 할 때까지 수입을 내기 힘들어 가신들과 분쟁이 이어지고, 히데요시의 전매특허인 이간질 때문에 가신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마사무네와 가신들 사이에 틈이 벌어져서 모니와 츠나모토[* 원래 성은 '오니니와(鬼庭)'였으나, 그를 만난 히데요시가 "마당(庭)에 [[오니]](鬼)가 있다니 재수가 없다. 수풀이 우거진 마당이라는 뜻의 모니와(茂庭)로 바꾸도록 해라"라고 해서 모니와로 성을 바꾸었다. 이 당시 히데요시는 '''73살'''로 전사한 아버지 요시나오가 요절한 것으로 취급받을 정도로 대대로 장수하는 그의 집안 내력을 듣고 장수 비결을 물어보기도 했으며, 장수 비법이 쌀가루를 따뜻한 물에 타서 한 잔씩 마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두고두고 따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히데요시와 가까워지고 히데요시가 아예 가신으로 들이려고까지 해서 마사무네에게 의심받자 사이가 벌어져서 가문을 탈주했다가 후일 복귀했다.] 다테 시게자네[* 다테 시게자네 같은 경우 탈주한 후 성을 접수하러 간 마사무네의 가신들과 구 시게자네의 부하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시게자네의 가신단이 살해당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단 드라마처럼 가족들까지 죽임을 당했다는 비극적 이야기는 설화에 불과하고, 시게자네는 복귀 후 다시 마사무네와 양호한 관계가 되었다.] 등 여러 중요 후다이 가신들이 이 시기에 마사무네 곁을 떠났다가 한참 후에서야 복귀하게 된다. 이후 모가미 요시아키의 딸 코마히메의 처형이 벌어진 축생총 사건에서도 사촌이라는 이유로 모가미 요시아키와 함께 반란 혐의를 썼으나 용서받는다. 반면 요시아키 쪽은 연금 처분.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서 굳건히 버텨낸 마사무네는 히데요시가 죽을 무렵에는 비록 [[오대로]] 목록에는 끼지 못했지만 전국 고쿠다카 5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히데요시 사후, 이번에는 도쿠가와와 연합하여 사돈 관계를 맺으며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까지 동군으로 참전하여 하세도우 전투 등에서 우에스기 가문과 싸웠으며, 댓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백만석으로 영지를 늘려줄 것이라는 약속장을 받는다. 심지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테가 동군 측인 난부 가문의 영지에서 반란을 선동했다는 트집을 잡아 약속을 백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오사카 전투]]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편에 서며 막부측의 경계심을 적절히 이용해 대규모 영지를 유지하고 막부의 원로 지위를 획득했다. 게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후견인이 되어 이에미쓰를 쇼군으로 세우는데 성공하며, 심지어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사석에서는 다테 마사무네를 '''아버지(또는 할아범)'''로 부를 정도로 가까운 관계가 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에선 동생만 총애하는 어머니에게 미움받은 일로 두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때 마사무네는 자신들과 비슷한 입장인 [[오다 노부나가]]의 예를 든다.] 이러한 연표들을 종합해봤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센고쿠 시대의 또 다른 승리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